종 목 : 사적 제125호 명 칭 : 종묘(宗廟)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궁궐·관아/ 사우 수량/면적 : 194,331㎡ 지정(등록)일 : 1963.01.18 소 재 지 : 서울 종로구 훈정동 1-2 시 대 : 조선시대 소유자(소유단체) : 국유 관리자(관리단체) : 종묘
서울특별시 종로구 훈정동에 있는 종묘(宗廟)는 조선시대 왕가(王家)의 신위(神位)를 봉안한 사당이다. 즉 종묘는 조선왕조의 왕과 왕비, 그리고 죽은 후 왕으로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는 유교사당이다. 종묘는 본래의 건물인 정전(正殿)과 별도의 사당인 영녕전(永寧殿)을 비롯하여 여러 부속건물이 있다. 서울지하철 1호선과 3호선 그리고 5호선의 종로3가역에서 내려 조금만 걸으면 종묘의 광장과 종묘의 매표소가 나온다. 매표소 앞 종묘 광장에는 하마비(下馬碑)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된 어정(御井)이 있다.(어정은 공사 관계로 사진 촬영 못 했음) 비석에는 大小人員下馬碑(대소인원하마비)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하마비(下馬碑) 종묘의 정문(밖에서 본것) 평삼문 종묘 정문은 외대문(外大門) 또는 외삼문(外三門)이라고도 한다. 정문은 궁궐 정문과는 달리 구조 형태가 아주 검박하고 단순하다. 종묘의 정문 안에서 본것
정문에서 종묘로 들어오는 문은 세 개가 있다. 중앙의 문은 죽은 자(神)가 들어오는 문이고, 왕을 비롯한 고관대작들은 동쪽인 오른쪽 문을, 신하들은 서쪽인 왼쪽 문으로 출입한다고 한다.
뒤돌아본 종묘정문(돌길의 가운데는 신(神)의 길입문이다) 세계문화유산 표지석 돌길의 가운데는 신의 길입문이다 종묘의 지당(池塘) 하지(下池) 정문 들어서면 왼쪽 첫번째 종묘의지당 중지(中池) 망묘루 앞 종묘의지당 중지(中池) 망묘루 앞 종묘의 지당 상지(上池) 정전 앞 숲속에 있음
망묘루 망묘루는 제향(祭享)때 임금이 머물면서 휴식을 취하고 사당을 바라보며 선왕(先王)과 종묘사직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부쳐진 이름이다. 공민왕 신당 종묘에는 특이하게도 공민왕 신당이 있다. 망묘루 동쪽의 별당으로 고려 31대왕 공민왕을 위하여 종묘 창건 시에 건립되었다고 전한다.
신당 내부에는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가 한자리에 있는 영정(影幀)과 준마도(駿馬圖)가 봉안되어 있다.
향대청 향대청은 종묘에 사용하는 향축폐(香祝幣)와 제사 예물을 보관하고, 제향(祭享)에 나갈 헌관들이 대기하던 곳으로 남북으로 긴 뜰을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에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향로(香路) 향대청(香大廳) 안에 전석(塼石)이 깔려 있는 길은 종묘제례때 香과 祝文을 모시는 길이라 하여 香路라 힌다.
재궁 정전 동남쪽에 위치한 재궁은 어숙실이라고도 하며 국왕이 제사를 준비하던 곳이다. 재궁 북쪽에는 임금이 머무는 어재실, 동쪽에는 세자가 머물던 세자재실(世子齋室)이 있고, 서쪽에는 어목욕청(왕이 목욕하는 건물)이 있다.
어재실
세자재실(世子齋室)
어목욕청(왕이 목욕하는 건물)
화재방지용 "드므" 고궁에 가면 건축물 앞에 큰 화로 또는 솥처럼 생긴 물건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다름 아닌 "드므"이다.
드므"는 "넓적하게 생긴 큰 독"이란 뜻의 순수한 우리말로 그 안에 물을 담아 놓으면 불귀신이 왔다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 달아난다는 주술적 의미가 있으며, 화재가 났을 때 실제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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