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조] 미로의 다른 이름
미로의 다른 이름
우아하게 얽힌 덩굴 향 그런 살 냄새란 미로랑 딸 미로랑 그 자손의 거주지다. 뒤섞인 사람냄새로 길은 본래 시금털털하다
대낮의 숲속에서 일상은 정박이다 바닥에 주저앉아 차오른 숨 고른다. 끌고 온 삶의 꼬리를 잘라버린 도마뱀
수많은 길을 삼켜 통통히 살이 올라 꿈틀꿈틀 뭉클뭉클 미로의 흰 배때기 만삭인 옆구리 찢어 피 묻은 땅 받든다.
삼동을 난 도토리들 오보록 새순 올려 이정표를 새우듯 푸른 손을 흔든다. 발 냄새 땀 냄새 먹여 길 내기 좋은 그곳
- 서연정(1959~ )
신록(新綠)이 한층 짙어지고 있다. 그런 중에도 꽃들은 피고지고, 기념일 많은 우리네 달력도 피고 진 꽃 자취로 어지럽다. 기려야 할 날이 유독 많은 오월 그 덕에 일기며 신용카드 등에도 출혈(出血)의 흔적이 붉게 그어진 채 넘어가곤 한다.
그러나 미로도 당연히 많을 법하다 세상의 숱한 길들, 그 속에서 미로(迷路)의 이름으로 중첩하는 길 내기를 다시 본다. 길이란 어쩌면 ‘피 묻은 땅’을 받들듯, 만삭의 ‘옆구리 찢는’ 뼈아픈 기림으로 만드는 것 아릴까, 그런 ‘꿈틀꿈틀 뭉클뭉클’ 속에 ‘발 냄새 땀 냄새’ 잘 먹여가며 더 푸른 미로(美路)도 키우는 것 아릴까. (조선일보 5월 29일) 정수자․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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