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조] 오동꽃 오동꽃 언제였나 간이역 앞 삐걱대는 목조 이층 찻잔에 잠긴 침묵 들었다 다시 놓고 조용히 바라본 창밖 속절없이 흔들리던 멀리서 바라보면 는개 속 등불 같은 청음도 탁음도 아닌 수더분한 목소리로 해질녘 삭은 바람결 불러 앉힌 보랏빛 누구 삶이 저리 모가 나지 않았던가. 자름한 고, 어깨를 툭 치면 울먹일 듯 오디새 울다간 자리 등 돌리고 피는 꽃 - 유재영(1948~ )
오동꽃이 좋을 때다. 큰 잎사귀들이 퍽이나 으늑하던 오동나무, 시골집 앞 오동에 달빛이 내리면 한층 그윽해진 그늘이 서성이곤 했다. 스르렁, 거문고 소리가 스쳤던가, 보랏빛 꽃이 피면 향기도 널리 퍼져 ‘큰 나무에 큰 그늘’ 이라는 깊은 맛이 또 좋았다. 거문고, 가야금, 장고 같은 악기에 최상의 목재라니 오동은 역시 큰 나무답게 크게 풀고 가나 보다.
예전엔 딸을 낳으면 장롱감으로 오동나무를 심었다. 나무를 가꿀 수 있는 환경에서나 가능했던 아름다운 일이다. 불현듯 ‘는개 속 등불’ 같은 오동꽃 들고 우렁우렁 서 있을 오동 동네로 소풍 가고 싶다. 목조 게단 삐걱대는 이층에 앉아 오동을 오래오래 보고 싶다. 잎 그늘 퍼지는 소리를 농현(弄絃)인 양 느른히 누리며-. (조선일보 5월 22일)
정수자.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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