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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읽는 시조] 내가 나를 바라보니

무너미 2012. 5. 15. 06:12

 

 

[가슴으로 읽는 시조] 내가 나를 바라보니

 

내가 나를 바라보니

 

무금선원에 앉아

내가 나를 바라보니

 

기는 벌레 한 마리

몸을 폈다 오그렸다

 

온갖 것 다 갉아먹으며

배설하고

알을 슬기도 한다.

 

              -조오현(1932~ )

 

세상은 그 자체로 큰 스승이다. “내가 만나는 사람이 나의 스승이고 선지식(善知識)이다. 그들의 삶이 경전이고 팔만대장경” 이라는 스님의 말씀도 있었지만, 마음을 숙여 보면 그야말로 처처(處處)에 스승 아닌가. 풀이며 벌레며 사람들의 살아가다. 그러한데. 바쁘다는 핑계로 놓치고 지나칠 뿐이다. 자신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주변을 곰곰 여겨볼 짬도 없이 무슨 거대한 흐름에 휘말리듯 살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 중에 푸른 죽비 한 대를 맞는다. 설악산 백담사 무금선원(無今禪院)의 무한 고요를 뚫고 나온 일성(一聲), 그 속의 일침(一鍼)에 순간 움찔한다. 편안히 읊조리듯 ‘나를’ 벌레로 내려놓고 바라보는 저 통 큰 통찰! 게다가 ‘온갖 것 다 갉아 먹으며/ 배설하고/ 알을 슬기도 한다. 니, 한 생명으로서의 천연덕스러움에 웃음도 슬몃 물게 된다.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蜨夢)‘과도 또 다른 명료한 조감 같은 응시에 윤회까지 얹어 돌아보는 날-. 일상이 절집이고, 삶이 곧 만행(萬行)이라고 뇌던 말을 가만 주워 담는다. (조선일보 5월 15일)

정수자․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