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調. 童詩, 漢詩/가슴으로 읽는 시

[가슴으로 읽는 시] 동안

무너미 2012. 6. 18. 06:09

 

 

[가슴으로 읽는 시] 동안

 

동안

 

면도기가 충전이 다 되었다고 녹색등을 깜빡이는 동안,

반딧불이가 난생처음 하늘을 치고 올라 수줍은 후미등을 켜고 구애하는 동안,

대학병원에서 죽어가는 환자가 원망인지 사랑인지 모를 눈빛을 가족에게 지어 보이고 있는 동안.

오늘도 세계의 어딘가에선 장착된 토마호크 미사일이 날고

사소한 약속을 지키려 나온 맨해튼 42번가의 사내는

째각거리는 시계를 자주 보며 공허한 두 손에 피로한

두 얼굴을 묻는다.

 

-이시영(1949~ )

 

내가 시를 읽는 동안 누군가는 나를 욕할지 모르고 내가 누군가를 욕하는 동안 또다른 누군가는 바흐의 칸타타를 듣고 있을지 모른다. 가장 사소한 시간 속에서 행복은 찾아지지만 그것을 무너뜨리는 것은 외부에서 올 때가 많다. 느닷없이 서울 하늘에 미사일이 떨어진다면? 어느 날 느닷없이 군대에 소집된다면? 어느 날 병(病)이 오고 또 어느 날 힘겨운 일이 찾아올지 모른다. 역사 속을 뒤져보면 분명 그러한 일들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장미가 한창이고 된장국에 맛있게 식사를 한 나는 이 순간을 행복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순간은 순간! 지금 누군가에게 남모르는 협박을 당하는 아이가 있고 우울증에 빠진 중년이 있고 암을 선고받는 사람이 있다. 굶는 사람이 있다.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시인은 무엇을 할 것인가. 정치가는 무엇을 할 것이며 부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나무 그늘로 바람이 살랑인다. (조선일보 6월 18일)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