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 미움 가득히
미움 가득히
놀 푸른 얼룩무니 그 아름다움 보드란 날개 가진 나비를 빼어난, 또 루비 같은, 오로지 하나의, 어깨에 별 그려진 나비를 억세게 그녀 손에 건네었건만 받지 않는 그녀기에 매차게 봤네. 뜨거운 여름 볕의 가득 찬 미움 울지 않는 그녀기에 그 입술가에 파랗고 누런 지독스러운 가루 밉살스리 날개를 비벼대었네.
- 기타하라 하쿠슈(北原白秋․ 1885~1942)
내게 맨 처음 찾아온 사랑의 감정은 비유컨대 나비가 마땅하니, 그 부정형의 씰룩거리는 비행(飛行)의 형태가 그렇고 친근하지는 않으나 아름답기는 한, 곤충의 생경한 어여쁨이 또한 그렇다. 스스로도 그것이 자기의 것인지 확신이 안 서는 첫사랑의 감정은 그래서 금세 울 밖으로 날아가 버리고 잔상(殘像)만 평생에 걸쳐 어른거리는지 모른다. '빼어난'이라고 우선 설명조로 말하고는 휴지기를 가질 수밖에 없는 그녀, 이어서 '또 루비 같은'이라고 좀 더 구체적으로 떠올려보며 또 한 번 휴지기를 갖는다. 루비, 꼭꼭 숨겨 둔 매끄러운 보석이었던 것이다. 이어서 다짐하듯, 혹은 맹서하듯 '오로지 하나의'라고 말하고 길게 숨을 내쉬었으리라.
하지만 허망해라. 그 모든 그리움과 망설임과 용기가 한순간 날아갔으니 그 까닭은 '억세게 그녀 손에 건네'었던 탓일까? 그 '억세게'에서 그만 눈물이 날 지경이다. 억세지 않을 수 없는 심정을 왜 헤아릴 줄 모를까!
아름답던 무늬는 짓이겨져 그만 가루가 되고 말았다. 이런 아름다운 시로 복수받기 위해 '그녀'들은 꼭 '나비'를 받지 않는지 모른다. (조선일보 6월 20일) 장석남․ 시인․ 한양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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