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調. 童詩, 漢詩/가슴으로 읽는 시

[가슴으로 읽는 시] 유혹

무너미 2012. 7. 16. 06:47

 

 

[가슴으로 읽는 시] 유혹

 

유혹

 

여름 동안 창가 紫薇꽃이 붉게 코팅한 통유리;

잘못 들어온 말벌 한 마리가

유리 스크린을 요란하게 맴돈다.

환영에 鐵날개를 때리며

 

어? 여기가 바깥인데 왜 안 나가지냐?

 

無明盡亦無無明盡*

 

바깥을 보는 것까지는 할 수가 있지,

허나 바깥으로 한번 나가보시지

 

아아, 울고 싶어라, 그 통 유리창에 눈보라 몰려올 때

나, 깨당 벗고 달려 나가

흰 벌떼 속에 사라지고 싶었다.

 

- 황지우(1952~ )

*무명진 역무무명진: ‘반야심경’의 구절을 응용한 것으로 ‘어리석음(無明)이 다하고 또한 어리석음이 다할 것도 없는 공(空)의 상태라는 뜻으로 해석됨.

 

 

매에 쫓기던 꿩이 시골집 유리창에 부딪혀 즉사하는 것을 본적이 잇다. 적(敵)에 대해서, 사기(詐欺)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유리 막을 해놓고 자미꽃의 찬란을 보여준다면 죽을둥 살둥 덤비는 것이 어디 말벌뿐이랴, 알겠으나 좀처럼 가 닿을 수 없는 나라가 있으니, 그 안타까움은 어떻게 할까.

 

슬슬 유리 스크린이 내려온다. ‘겨울의 환(幻)’이라고 해도 되리라, 대선(大選)이라는 것 말이다. 우리들은 말벌의 신세가 되고 싶지가 않다. 이번 겨울 눈보라 속에 달러나가 사라지고 싶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선일보 7월 16일)

 

장석남·시인· 한양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