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 꽃은 언제 피는가
꽃은 언제 피는가.
사랑하는 이의 무늬와 꿈이 물방울 속에 갇혀 있다가 이승의 유리문을 밀고 나오는, 그 천기의 순간, 이순의 나이에 비로소 꽃피는 순간을 목도 하였다. 판독하지 못한 담론과 사람들 틈새에 끼어 있는, 하늘이 조금 열린 새벽 3시와 4시 사이 무심코 하늘이 하는 일을 지켜보았다.
- 김종해(1941~ )
무엇인가 혹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어떤 무늬가 새겨지는 걸까? 진정 사랑하는 마음은 그러나 쉽게 쏟아지거나 내보여지지 않는다. 그 마음은 가령 '물방울 속' 같은 장소에 머물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갇혀 있는 마음이라니! 물의 벽을 한 감옥, 그것이 사랑인 셈이다. 투명하고 또 빛나며 그러나 만질 수 없고 옮길 수 없다. 마치 저승의 물건인 듯해 그것이 나오는 순간은 한 세계의 탄생과 같으므로 '이승'으로 건너오는 것이다.
꽃이란 이름으로 오는 것, 그것의 전신(前身)이 사랑이었으리라는 깨달음, 그것도 허드레 사랑이 아니라 '물방울에 갇혔던 사랑'이었으리라는 발견은 그러나 아무에게나, 아무 때나 오지 않으리라. 꽃 '피어난다'고 한 까닭이 그것이리라. 귀가 순해지는 나이가 발견한 섬세한 개화(開花)의 해석에 가슴을 맡겨보는 아침이다. (조선일보 7월 24일) 장석남·시인·한양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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