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조] 사금(砂金)
사금(砂金)
입을 막고 울었다. 소리 나자 말라 울었다. 저녁 햇빛 쓸쓸해 커튼을 내리고 사람은 때로 혼자서 울 줄 아는 짐승
책갈피 씀바귀꽃 곱게도 말랐는데 소리 나지 말라 해도 소리 나는 울음 있어 모래손 흩어버리면 사금처럼 남는 별
들키고 싶은데 아무도 돌아보지 않은 바보들아, 바보들아 우리 버려진 등성이 가을은 참을성 있게 가을물 또 보낸다.
- 홍성란(1958~ )
가을은 깊었다. 단풍이 도심의 고살까지 쳐들어오더니 눈 못 뜨게 부시던 시월 햇살도 빛을 접어간다. 설핏한 저녁나절, 잡을 수 없는 게 시간임을 알지만 각기 떨어져 흩날리는 잎을 보면 으스스 쓸쓸하다. 그런 으스름에 누군가는 커튼을 내리고 깊이 울기도 하겠다. ‘울 줄 아는 짐승’은 제 슬픔에 겨워 한 철을 또 울음에 실려 보내는가.
우린 늘 시간의 등성이에 서서 버려진 등성이처럼 계절을 보내곤 한다. 꽃도 보내고, 마른 풀도 보내고, 사람도 더러 보낸다. 그래도 손에 가만 쥐어볼 사금 같은 별이 남았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들키고 싶은데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고 옹송그리고 앉아 가을이 떠나는 소리를 새겨듣는다. 가을이 참을성 있게 저의 물을 보내듯 -.(조선일보 10월 30일) 정수자·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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