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調. 童詩, 漢詩/가슴으로 읽는 시2

노숙

무너미 2014. 7. 7. 07:51

 

 

 

 가슴으로 읽는 시 노숙

 

  

                             ▲유재일

 

노숙

 

몸보다도 훨씬 가벼운

 

문짝 하나 없는

껍질뿐인 집을 이고

 

흡사

팽이가 팽팽 돌다가 쓰러져

오래 잠드는 것처럼

 

오늘 밤도 느릿느릿 달팽이는 기어서

어느 꽃그늘 아래 잠드는가

 

―박정남(1951~ )

 

 

이불과 몇 가지의 옷을 들고 다니는 노숙인을 본 적 많다. 큰 다리 아래서, 소공원 벤치에서, 지하도에서. 그들의 깡마르고 검은 얼굴에 흐르는 불안을 본 적 많다.

 

이 시는 한뎃잠을 자는 사람을 달팽이에 비유했다. 가옥(家屋)을 머리 위에 보따리처럼 이고 다니고 있다. 열고 들어설 문짝도 없는 빈 껍데기의 집이다. 팽이가 아찔하게 돌다 쓰러지듯이 혼곤한 잠 속으로 빠져든다. 꽃그늘이 드리워진 곳에서.

 

이 생기 없는 노숙자의 초상(肖像)은 우리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우리도 정처 없이 유랑하고, 가파른 생의 비탈에서 두글두글 굴러 내린다. 우리의 영혼은 사랑과 이해라는 집채의 바깥에서 너무나 빈번하게 노숙한다.

문태준 | 시인

[출처] 프리미엄조선

 

오늘의 좋은 글

 

몸은 곤궁하나 시는 썩지 않네

 

강변 십리 길을 굽이굽이 돌면서

꽃잎 속을 뚫고 가니 말발굽도 향기롭다

산천을 부질없이 오고간다는 말 마소

비단 주머니에 새 시가 가득 하다오

- 송재소의 <몸은 곤궁하나 시는 썩지 않네> 중에서 ‘이달’의 ‘강을 따라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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