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시조] 사는 게 詩詩하네
사는 게 詩詩하네
시를 쓰면 뭐가 좋니
시집내면 돈이 되니
쓸 수밖에 없으니까,
먹고 사는 길은 아냐,
단숨에 발가벗겨진 그 말 앞에 가만 섰다
술 한 잔 되지 못한
몇 마디를 채워 넣고
독한 것, 내뱉으며
눈을 한번 치켜뜬다
그래도 미끄덩하며 뭔가 빠져 나간다
―이나영(1992~ )
▲일러스트 : 이철원
시를 쓴다는 게 얼마나 무모한 노릇인지 익히 안다. 무용(無用)인 줄 알면서도 빠지면 헤어나기가 더 어려운 세계. 그렇게 시의 나라에 발을 들이면 '사는 게' 영 시시하고 그럴수록 더 '詩詩'해질 수도 있겠다. 예술인 중 연봉이 가장 낮아도 문학이라는 짝사랑으로 황홀하니. 앞서간 어느 시인의 말처럼 제풀에 '높고 외롭고 쓸쓸한' 종족이니!
그러므로 쓴다. 아니 그렇기에 또 쓴다. '쓸 수밖에 없으니까'! 갈수록 돈이 구세주라, '먹고 사는 길' 아님을 잘 안다. 그래서 늘 마른 목을 스스로 축이며 가는 길. '독한 것, 내뱉으며/눈을 한번 치켜'뜨며 시를 찾아 오늘도 기꺼이 앓는다. '술 한 잔 되지 못한/ 몇 마디를 채워 넣'으려고 하릴없이 헤맨다. '그래도 미끄덩하며 뭔가 빠져' 나가면 갖은 애를 태우다 더러 자신을 바치기도 하며….
정수자 시조시인
[출처] 조선닷컴
'詩, 詩調. 童詩, 漢詩 > 가슴으로 읽는 시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구리 소리 (0) | 2016.07.15 |
---|---|
覺淵寺(각연사) 오디 (0) | 2016.07.09 |
반소매 수의―접경 시편 5 (0) | 2016.06.24 |
군내와 향내 (0) | 2016.06.17 |
노고단 원추리꽃 (0) | 2016.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