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는 동시] 봉숭아
봉숭아
봉숭아물 들인 밤엔
올빼미잠을 잤다.
꽃물이 새어 날까
부챗살처럼 펴 든 손.
골무 낀 열 손가락이
밤새도록 아렸다.
땡볕에 여문 불송이
손톱에 옮겨진 뒤
반달이 기울어
그믐밤 될 때까지
그 달이
차마 아까워
손톱 깎기도 삼갔다.
―진복희 (1947~)
▲일러스트 : 이철원
봉숭아처럼 우리 민족 정서와 어울리는 꽃이 또 있을까 싶다. '봉숭아' 하면 어린 시절 일기장을 다시 펴 보는 것처럼 가슴에 아련한 꽃물이 든다. 이 동시처럼 봉숭아꽃 묶은 손을 부챗살처럼 펴 들고 올빼미처럼 거의 뜬눈으로 잠을 설치던 아름다운 때가 있었다. 꽃물 들이느라 밤새 아렸던 열 손가락에 아침에 뜨던 선연한 반달!
열 손가락 손톱마다 반달이 뜨던 어린 시절이 어찌 그립지 않으랴. 그 달이 차마 아까워 손톱 깎기도 삼갔던 '봉숭아 꽃물처럼 아름답고 순수한 시절'을 어찌 잊으랴. 이번 여름엔 아이들과 함께 봉숭아 꽃물을 들이며 그 시절 동심으로 돌아가면 어떨까.
이준관 아동문학가
[출처]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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