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詩調. 童詩, 漢詩/가슴으로 읽는 동시

수제비

무너미 2016. 11. 30. 17:20

[가슴으로 읽는 동시] 수제비

 

수제비

 

모처럼

엄마 쉬는 날

거실 바닥에

다리 쭉 뻗고 반죽하는 엄마는

회사 서은희 과장님이 아닌

진짜 우리 엄마 같다

 

푸슬푸슬하던 밀가루

어느새 끈적끈적 붙어

둥글둥글 모아지는 동안

방에만 있던 식구들

슬금슬금 거실로 나와

반죽처럼

사이좋게 붙고

 

멸치국물 냄새

하얀 물결처럼 넘실거리는 식탁에

온 식구 빙 둘러

야들야들한 수제비 후후 불어 먹으면

남모르게 좋은 일 생긴 때처럼

가슴 속이 울렁울렁해진다.

 

신난희(1959~ )

                일러스트 : 김성규


수제비는 중장년층엔 추억의 음식이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 어머니는 멀건 장국물에 손으로 밀가루 반죽 뭉텅뭉텅 떼어내어 수제비를 끓였다. 그런 수제비 후후 불며 먹으면 배 속이 뿌듯이 차오르고 훈훈해졌다. 수제비는 어머니의 손맛이요, 고향의 입맛이었다.

 

직장을 모처럼 쉬는 날 다리 쭉 뻗고 반죽하는 엄마, 그리고 '푸슬푸슬하던 밀가루/ 어느새 끈적끈적 붙듯이' 사이좋게 붙어 수제비를 만들어 먹는 식구들의 모습이 참 평화롭고 오붓하다. 날이 추워지는 때면 몸과 마음이 훈훈해지는 엄마가 끓여주는 수제비가 문득 먹고 싶어진다.

 

이준관 아동문학가

출처 : http://news.chosun.com


'詩, 詩調. 童詩, 漢詩 > 가슴으로 읽는 동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장하는 날  (0) 2016.12.14
아가 구두  (0) 2016.12.07
나뭇잎 편지  (0) 2016.11.23
모과 따던 날  (0) 2016.11.16
화장실 청소  (0) 2016.11.09